바둑계의 전설 조훈현, 고향부터 정치까지…이창호와의 인연까지 정리
바둑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 바로 조훈현입니다.
그는 바둑계의 전설이자, 한국 바둑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끈 선구자이며, 후에 국회의원으로까지 활약한 인물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훈현의 고향, 학창 시절, 바둑계의 활약, 이창호와의 인연, 그리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 활동까지 조훈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훈현의 고향과 어린 시절
조훈현은 1953년 3월 10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목포는 바다와 맞닿은 항구도시로, 조용하고 정적인 환경이 바둑과도 어울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조훈현은 집 근처에 있던 작은 바둑 도장에서 자연스럽게 바둑을 접하게 되었고, 유난히 눈이 반짝이던 그 소년은 곧바로 바둑 신동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재학 시절 이미 지역에서는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바둑에 몰입했고, 당시 목포에서 서울까지 바둑 공부를 위해 이동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노력과 집중력은 조훈현이 세계적인 기사로 성장하는 데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일본 유학과 입단
조훈현은 단 9세의 나이에 일본기원에서 세계 최연소로 입단합니다.
그는 당시 일본 바둑계의 거장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의 문하에서 바둑을 배우며 실력을 갈고닦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일본 유학은 단순한 기술 연마의 시간이 아니라, 조훈현이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포석과 집중력, 인내심을 갖춘 승부사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바둑계의 황제, 전무후무한 업적
귀국 후 조훈현은 한국 바둑계의 중심 인물로 자리 잡습니다.
그는 전관왕을 세 번 달성하고, 국내 타이틀만 무려 160회 이상을 거머쥐며 한국 바둑계를 평정했습니다.
그의 실력은 단순한 기술적 우위에 있지 않습니다. 조훈현은 바둑을 통해 철학과 삶을 표현했으며, ‘고요한 전쟁’이라 불리는 바둑판 위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논리적인 싸움을 펼쳤습니다.
1989년에는 제1회 잉창치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 바둑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고, 이후 세계 최정상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전체 바둑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창호와의 운명 같은 인연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 바둑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경쟁이자 동행입니다.
이창호는 어린 시절 조훈현의 문하에 들어가 바둑을 배우며 성장했고, 빠른 시일 내에 세계 무대를 평정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공식 대국에서 총 314번이나 맞붙었으며, 이창호가 195승, 조훈현이 119승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타이틀전에서는 이창호가 49승 19패로 앞섰지만, 조훈현은 그 어떤 패배에도 자존심을 잃지 않았고, 이창호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뻐한 스승이었습니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떠나, 바둑 팬들에게 큰 감동과 철학적 메시지를 남긴 명승부였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한국 바둑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정치인 조훈현, 국회의원으로의 변신
2016년, 조훈현은 바둑 외에도 정치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바둑진흥법 제정을 이끌어냈습니다.
바둑계의 환경 개선, 저변 확대, 바둑 교육 강화 등을 담은 이 법안은 그가 바둑계에 남긴 또 하나의 족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조훈현이 단지 바둑 천재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까지 끼칠 수 있는 인물임을 증명한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바둑과 철학을 담은 저서 활동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과 바둑에 대한 사유를 담은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바둑뿐 아니라 승부와 인생에서의 지혜를 전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승부란, 반드시 이기기보다는 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줍니다.
결론: 조훈현은 단지 바둑인이 아니다
조훈현은 대한민국 바둑계의 산 역사입니다.
그는 고향 목포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한국을 세계 바둑 1위 국가로 만든 선구자였고, 스승으로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정치인으로도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오늘날 조훈현이라는 이름은 단지 기사 한 사람을 넘어, 바둑의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그가 이룬 기록과 철학, 그리고 남긴 인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바둑 팬들과 국민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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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서는 이창호와의 전설적인 대결 한 판 한 판을 살펴보는 시리즈도 준비하겠습니다.
조훈현, 그 이름이 가진 무게는 아직도 반상 위에서 묵직하게 울리고 있습니다.